성매매 특별법 시행 이후, 한 쪽으로만 치우쳐진 기사가 많았는데... 오랜 만에, 마음에 와 닿는 기사를 봤네요.
그런데, 우연찮게, 친구녀석이 쓴 기사라... 괜히 뿌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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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황정은 기자]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여성계는 “성매매는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이자 범죄”라며 법에 의거한 강력한 단속을 요구하고, 집창촌 여성들이 벌이는 생존권 시위가 성매매 업주 주도로 이뤄지는 것이라는 등 사회적 논쟁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성매매를 사업(비즈니스)으로 인정하라는 급진적 요구까지 나온다. 해답의 열쇠는 뭘까. 본지 기자가 서울 영등포 집창촌의 성매매 여성들 현장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낮과 밤을 함께 했다. 돼지 저금통을 깨 급한 생활비를 보태고 단칸방에서 강아지를 벗 삼아 지내고 있는 이들은 ‘근본적인 삶의 방향 바꾸기’가 제일 힘들다고 했다. 직업 교육뿐 아니라 사회 적응 교육이 더 필요하다는 요구도 나왔다.
김영주(가명·27), 이혜나(가명·23)씨는 서울 신길동 다세대주택의 10평짜리 옥탑방에서 산다. 이들의 하루는 남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시작된다.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밤새 일한 뒤 오전 9시쯤 잠들었다.
지금도 생활이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영등포 집창촌과 5분 거리의 집, 동네 가게와 미장원이 그들이 사는 세상의 전부다. 달라진 점이라면 예전엔 ‘직장’으로 출근했지만, 지금은 영업이 재개되길 기다리며 집에서 논다는 정도다.
혜나는 ‘아는 언니’ 소개로 5년 전 성매매를 시작했다. ‘어깨’인 남자친구는 그에게 필로폰 주사까지 놓으며 더 많이 일하도록 다그쳤다. 마약 복용혐의로 아직도 보호감찰 상태인 그는 900만원 정도의 카드빚을 진 신용 불량자다. ‘성매매특별법’ 얘기가 나오자 그는 격렬하게 반응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 왜 못하게 해요? 나 빚 갚고 돈 벌어서 나가야 한단 말이에요.”
최재연(가명·24)씨는 피임을 안 해 임신 4개월 상태에서 중절수술을 경험했다. 룸살롱, 안마시술소를 거쳐 영등포로 온 그는 어머니와 언니, 동생 4명의 생활비를 대고 있다. 경리인 언니의 월급은 월 85만원. 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냐고 묻자 “그럼 언니한테 하라고 해요? 동생들 똑바로 자라주기만 하면 돼요. 난 돈만 벌면 돼” 하며 시무룩해졌다.
악착같이 돈을 모아 친구들로부터 ‘독종’ 소리를 듣는 영주씨는 2년 전 집창촌을 떠났었다. 6년간 모은 5000만원으로 애완견 센터를 차렸다. 하지만 경험 부족으로 9개월 만에 완전히 거덜 낸 뒤 다시 이곳으로 왔다. “세상 물정 몰라서 남자한테 사기도 많이 당해요.”
그러나 이들은 모두 탈성매매 지원시설에는 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이미지도 안 좋고, 거기서 가르쳐주는 직업훈련 프로그램도 획일적이라 싫단다. 2007년까지 유예기간 주면 빚 갚고 돈 벌어서 나가겠다는 것이 이들 계획이다. 재연씨는 돈 벌어 미용실 차리는 게 꿈이고, 혜나씨는 강북에 30평짜리 아파트 마련해 시집가는 게 목표다. 영주씨는 다시 애완견 가게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만난 지 5일째 되는 토요일 오후. 영주씨, 혜나씨를 설득해 영등포역 근처로 커피를 마시러 갔다. 따사로운 햇살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늘로만 피해 다녔다. 5분도 안 돼 혜나씨가 “언제 가요?” 하며 다리를 떨었다. 영주씨는 “이 일 그만뒀을 때 햇빛만 봐도 어지러워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며,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사는 게 두렵다”고 했다.
혜나씨가 처음으로 속내를 털어놨다. “좋아서 이 짓 하겠어요? 돈으로 보이니까 하지. 우린 ‘몇 사람 했냐’고 말 안 해요. ‘몇 개 했냐’고 하지. ‘10분만 참으면 6만원인데’라는 생각에 구역질 나면서도 하는 거예요.” 그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이거(성매매) 없어져야 해요” 하며 뒤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