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부터 말하자면,
사무실에서, 손발 멀쩡한 사람이, 자기는 한번도 커피를 끓여 준 적 없으면서, 남한테 커피 끓여 오라고 시키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는 사람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고 하니...
오늘 교회 사무실에 나갔었는데,
감기 기운도 있고 해서, 기분이 안 좋긴 했다.
그런데, 할 일도 별로 없고, 교회에 도움이 되는 자원 봉사를 하고 있다기 보다는, 나 때문에, 괜히 데이빗이 일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 참이었다.
데니스가 은행잔고 정리를 하는 걸 도와 주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정작 데니스는, 사실 가르쳐 줄 게 별로 없으니까, 이따가 은행에 같이 가자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은행에 가서 뭘 가르쳐 줬게요? 은행에 돈 집어 넣는 법 - . - 나를 뭐, 바보로 아나 - . - 누구나 다 하는 걸, 뭘 가르쳐 주나 - . - 아쓰. 승질나 - . - )
그리고 나서, 30분간 할 일이 없을까 물어 봤더니, 트렁크에 있는 주인없는 물건은 교회 밴으로 옮겨 달라고 했고, 여기 까지는 참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커피 네 잔을 끓여 오라고 했다, 물론, 끓여 오라고는 하지 않았고, Do you mind if... 로 시작되는, 영국 특유의 친절하고 예의바른 표현이었지만...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뭐랄까, 내가 돈도 안 받고, 도와 주는 건데, 커피 끓여 줄려고 온 건 아니지 않은가.. 하는....
그래도 여기 까진 괜찮았다... 커피를 타서 올라 와서는 한 잔씩 돌리면서, 배시시 웃으면서 그랬다. 내가 원래 커피를 잘 못 탄다고, 아마 본인들이 타 드시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이에 질세라, 데이빗. 우리가 커피 타는 거 잘 가르치면 되지 - . - )
여하튼, 여기 까지는 괜찮았는데...
그냥 기분이 좀 그래서 한마디 쏴 댔다. 일이 많은데, 일손이 부족해서, 도와 주는 건, 정말 기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여기 까지 나와서 아무 일 안 하고 앉아 있고 싶지 않다고...
문제는, 원래 교회에서 일하던 친구가 결혼 준비로 1월 즈음에 일을 그만 둔다고 했다. 그래서 그 친구가 그만 두기 전에, 갭을 메꿀 사람이 필요하다는 건데...
다른 사람을 구하기 전에, 내가 좀 맡아서 해 줬으면 좋겠다는 거다..... 갑자기 기분이 더 많이 상했던 건, 공짜 자원봉사면 나를 쓰겠지만, 돈 주고 사람 쓰는 거면, 다른 사람을 채용하겠다는 식의 뉘앙스였다.
히유. 하나님 일을 하면서, 이렇게 시시 껍절한 걸로, 기분 상하면 안 되지만, 쓸데없는 자격지심이 확 치솟앗을 뿐이겠지.
한국이었으면,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앉아 있을까 하는...
하지만, 또 한 구석에서는, 하나님이, 잘난 척 잘 하는, 홍시내를 낮게 하는 교육을 하시느라, 그 분 만의 유머를 쓰시는 거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하하. 하나님은 , 참 유머가 넘치시는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