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us_fugit 2004. 3. 13. 14:47
저곳
                 - 박형준 -

空中이란 말
참 좋지요
중심이 비어서
새들이
꽉 찬
저곳

그대와
그 안에서
방을 들이고
아이를 낳고
냄새를 피웠으면

空中이라는


뼛속이 비어서
하늘 끝까지
날아가는 새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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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어 있음이란 그만큼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이니
좋지. 한 때 내가 좋아했던 시인인데
내가 만난 작가들 중 시와 사람이 이만큼 꼭 일치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피폐(?)하고 쓸쓸한 시인이다.

암튼, 날도 흐리고 나라도 어지러운 토욜 오후.
모처럼 우체국에 가는 시간이 촉박하지 않아
오늘 비로소 소포를 부치고야 말았지롱.
별 것도 아닌 게 무겁기만 엄청 무겁더만
또 양재 우체국에서는 안 된다고 그걸 들고
꽤죄죄한 차림으로 서초 우체국으로
조심조심 들고 갔더니만 포장을 해야 한다고 함.
무척 허탈했지. 그렇게 낑낑대고 쌌던 시간들이.
포장하는 총각인지 아저씬 지 이게 뭐죠~
깨지는 액자인가요? 아뇨. 퍼즐 액자...(말문 흐려짐)
마치 나를 훑어보는 얼굴이 뭐 이런 걸 다 보내나 싶은...
그래도 꿋꿋이 잘 보내줘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해준다음
우체국을 나서는데 마치 식구 하나 어디로 보내버리는 것
같은, 그러나 무척이나 시원함 뿐인 마음이었다.
내심 뿌듯한 마음에 나왔지. 참깨 과자랑 캔커피를 먹으며.
전화를 적어야 한다기에 홈에 있는 그것 적었는데 맞남?

어쨌거나 별 것 아니지만
삼일 밤낮을 순전히 내 수공으로 만든 거니
아무 탈없이 무사히 잘 도착해서
네가 좋아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갖고 나가 보니 집에서 볼 때보다 괜히
크기만 더 크더라. 걸데 없을 듯 싶은데
그냥 한 쪽 구석에 내려놔도 좋을 듯 싶고.

그저 잘 도착하기만을 기도하면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