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us_fugit 2006. 6. 28. 17:11
기억이란 참 묘한 놈이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때, 기억을 끄집어내 주는 아주 좋은 녀석이, 바로 편지다.

오늘, 책상서랍을 정리를 하다가...
세 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하나는 95년.
미국에 사는 친구가 보낸 편지.
그때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그 친구가 보낸 편지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내 고2 생활은 참 힘들었었나 보다. 죽고 싶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던 거 같다.

지금으로선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일들이지만, 신기하게도...

결국, 누구나 고등학생 시절을 우울하게 보내는 걸까.
난 나름대로 그 시절을 즐겼다고 생각했었는데...

두 번째 편지는 2000년. 키부츠에서 알게 된 후배녀석으로부터 받은 편지.
안젤라라는 친군데, '가끔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연락'하기로 한 사인데, 도무지 연락할 방도가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라고는, 그 친구의 이름, 그리고 나이가 나보다 두 살 어리다는 것. 그리고 독일의 구동독 어딘가에서 대학을 나왔다는 것.

갑자기 보고 싶다. 그 친구.

세 번째 편지는, 대학 친구로부터 받은 엽서.
그 친구가 영국에 있을 때 쓴 엽서인가 본데, 우체국 직인이 찍히지 않은 걸 보니,
결국 한국에 돌아왔을 때 전해준 엽서같다.

'인생은 슬픔인 거 같다'는 자조적인 말과 함께...
내가 그 녀석 인생의 '증인'이 되어줄 거라는 가슴 벅찬 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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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은, 관계를 바꾸어 놓는다.
아주 친한 사이를 소원한 사이로 바꾸기도 하고.
소원한 사이를 어느 정도 친한 사이로 바꾸기도 하고.

한결 같고 싶은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몇 년 만에 만나도, 예전처럼,
'친구'라는 이유 때문에, 여전한 사이를 유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