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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기: 애국 게임 (이코노미스트)
tempus_fugit
2005. 12. 21. 23:43
Nationalism and science don't mix
민족주의와 과학은 섞여선 안 돼
한때 환대받았으나 현재는 수치인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자인 황우석의 뒤틀린 이야기는 많은 면에서 유익하다. 첫 번째로 이는 과학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적어도 의미 있는 방식으로는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의 노력에서는 때로 잘못된 결과가 정밀한 조사를 벗어날 수는 있지만, 인간복제처럼 논란이 되며 중요한 분야에서 부정확한 연구를 보고했을 경우에는 과실이 금세 드러나고 만다. 두 번째로 이번 사건은 과학자들이 유명인이 될 경우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유명 예술가의 청중은 변덕스럽게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판단을 받는 대상은 예술가의 재능뿐이다. 이와 반대로, 유명 과학자의 성공은 그의 재능뿐 아니라, 좋은 결과를 시기적절하게 주는 자연법칙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 ‘자연’은 과학자나 과학자의 청중이 이를 얼마나 원하는 지와 상관없이 과학자의 의도에 굽히지 않는다.
오만과 허영은 모두 굉장히 인간적인 악이며, 이와는 반대라는 주장이 때때로 있긴 하지만, 과학자들 역시 인간일 뿐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세 번째로 유익한 교훈은 다른 두 가지와 연관이 되어있기는 하지만 더 심오하다. 이는 바로 민족주의와 과학이 불안한 동침상대라는 것이다. 황 박사의 추락은 한국정부가 그를 한국의 과학의 힘의 전형으로 올리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는 그를 돋보이게 했을 뿐 아니라 그의 실험실로부터 위대한 차기 돌파구를 요구했다. 결국 그는 현재 공저자들도 인정하지 않는 치명적 흠이 있는 연구를 내고 말았다.
착각하게 만들었던 과학적 민족주의의 가장 유명한 예는 소비에트의 유전학자 트로핌 리센코이다. 어쩌면 유전학자가 아니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리센코는 생명체는 생애에 습득된 형질도 유전할 수 있다는 주장을 했기 때문에 그는 칭송을 받았고 스탈린에 의해 재정지원을 받았다. 이러한 주장은 자연의 돌연변이에 대한 마르크스 이데올로기와 잘 들어맞았지만, 소련의 농작물 향상 프로그램을 파멸로 이끌었다.
근원 때문에 경시되는 이와 반대되는 현상도 역시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의 훌륭한 물리학자들 다수는 유대인이었다. 이는 나치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이러한 유대 물리학자들을 설득해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했다. 이는 또한 나치들이 “유대 과학”을 이들의 순종 아리아 현실로 통합하는 것을 거부하도록 했다. 이는 독일의 원자폭탄 프로그램이 좌초되는 동안 대부분의 망명 인재들이 맨해튼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으니까, 어쩌면 잘 된 일이었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공학기술 역시 국가적 자존심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계획 뒤의 과학은 좀처럼 의심되지 않기 때문에, 충분한 물질적 투자를 하면, 종종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무슨 목적으로인가? 인류를 달에 보내기 위해서 미국이 소련과 함께한 경주가 (엄청난 텔레비전 보도를 하긴 했지만) 과학적 가치가 얼마만큼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국제적이라고 주장되기는 하지만, 사실은 미국기업인) 유인우주정거장은 임무를 기다리는 기지이다.
The truth will out 진실은 밝혀질 것
이러한 낭비와 파멸의 극단적인 예와 비교해, 황 박사의 실수는 상대적으로 온당한 것처럼 보인다. 인간복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두려워했던 위대한 도약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자축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치가 깨달았던 것처럼,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실을 부정하는 것 역시 동일하게 어리석은 일이다. 결국 누군가가 인간을 복제할 것이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지만 말이다.
민족주의와 과학은 섞여선 안 돼
한때 환대받았으나 현재는 수치인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자인 황우석의 뒤틀린 이야기는 많은 면에서 유익하다. 첫 번째로 이는 과학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적어도 의미 있는 방식으로는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의 노력에서는 때로 잘못된 결과가 정밀한 조사를 벗어날 수는 있지만, 인간복제처럼 논란이 되며 중요한 분야에서 부정확한 연구를 보고했을 경우에는 과실이 금세 드러나고 만다. 두 번째로 이번 사건은 과학자들이 유명인이 될 경우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유명 예술가의 청중은 변덕스럽게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판단을 받는 대상은 예술가의 재능뿐이다. 이와 반대로, 유명 과학자의 성공은 그의 재능뿐 아니라, 좋은 결과를 시기적절하게 주는 자연법칙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 ‘자연’은 과학자나 과학자의 청중이 이를 얼마나 원하는 지와 상관없이 과학자의 의도에 굽히지 않는다.
오만과 허영은 모두 굉장히 인간적인 악이며, 이와는 반대라는 주장이 때때로 있긴 하지만, 과학자들 역시 인간일 뿐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세 번째로 유익한 교훈은 다른 두 가지와 연관이 되어있기는 하지만 더 심오하다. 이는 바로 민족주의와 과학이 불안한 동침상대라는 것이다. 황 박사의 추락은 한국정부가 그를 한국의 과학의 힘의 전형으로 올리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는 그를 돋보이게 했을 뿐 아니라 그의 실험실로부터 위대한 차기 돌파구를 요구했다. 결국 그는 현재 공저자들도 인정하지 않는 치명적 흠이 있는 연구를 내고 말았다.
착각하게 만들었던 과학적 민족주의의 가장 유명한 예는 소비에트의 유전학자 트로핌 리센코이다. 어쩌면 유전학자가 아니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리센코는 생명체는 생애에 습득된 형질도 유전할 수 있다는 주장을 했기 때문에 그는 칭송을 받았고 스탈린에 의해 재정지원을 받았다. 이러한 주장은 자연의 돌연변이에 대한 마르크스 이데올로기와 잘 들어맞았지만, 소련의 농작물 향상 프로그램을 파멸로 이끌었다.
근원 때문에 경시되는 이와 반대되는 현상도 역시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의 훌륭한 물리학자들 다수는 유대인이었다. 이는 나치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이러한 유대 물리학자들을 설득해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했다. 이는 또한 나치들이 “유대 과학”을 이들의 순종 아리아 현실로 통합하는 것을 거부하도록 했다. 이는 독일의 원자폭탄 프로그램이 좌초되는 동안 대부분의 망명 인재들이 맨해튼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으니까, 어쩌면 잘 된 일이었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공학기술 역시 국가적 자존심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계획 뒤의 과학은 좀처럼 의심되지 않기 때문에, 충분한 물질적 투자를 하면, 종종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무슨 목적으로인가? 인류를 달에 보내기 위해서 미국이 소련과 함께한 경주가 (엄청난 텔레비전 보도를 하긴 했지만) 과학적 가치가 얼마만큼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국제적이라고 주장되기는 하지만, 사실은 미국기업인) 유인우주정거장은 임무를 기다리는 기지이다.
The truth will out 진실은 밝혀질 것
이러한 낭비와 파멸의 극단적인 예와 비교해, 황 박사의 실수는 상대적으로 온당한 것처럼 보인다. 인간복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두려워했던 위대한 도약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자축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치가 깨달았던 것처럼,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실을 부정하는 것 역시 동일하게 어리석은 일이다. 결국 누군가가 인간을 복제할 것이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지만 말이다.